투병기 모음 198

암 투병 작가 2인의 생존전략

암 투병 작가 2인의 생존전략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복거일 vs 다치바나 다카시 치료 거부 혹은 삶의 질 택해 암 투병 작가 2인의 생존전략 복거일씨(왼쪽)와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 간암 말기 치료 거부한 작가 복거일(10년 생존) "글 쓰다가 죽는 게 낫다" 복거일 간암 말기 진단 10년째 복거일의 암 발병 소식이 알려진 것은 2014년이다. 그로부터 3년 전인 2011년에 그는 암이 폐에서 간으로 전이된 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가 1946년생이니 65세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간암이 전이될 경우 5년 생존율은 3%였다. 치료를 받아도 수명 연장은 6개월에 불과했다. 그 수치대로라면 암 발병후인 2016년에 그가 살아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복..

비강상악동 미분화암과 14년… 서울대 약대 김규원 명예교수가 사는 법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1976년, 서울대 약대를 졸업했다. 1985년, 미국 하버드의대 다나-파버 암연구소에서 쥐의 기형암종세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암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2002년, 암 조직에서 혈관 생성에 핵심적인 단백질 인자를 조절하는 연구논문을 세계적인 학술지 에 발표했다. 2003년, 제1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자웅을 겨룰 만큼 촉망받던 암 과학자! 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한 걸까? 2006년, 비강상악동 미분화암종 진단을 받았다. 우리나라 암 연구의 최일선에서 활약하던 주역이 암 환자가 되어버린 기막힌 현실! 이름도 생소한 희귀암 비강상악동 미분화암종은 끈질겼다. 독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에도 꿋꿋이 ..

아품도 축복이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12월 12일! 절대로 잊을 수 없 는 날이다. 대통령 선거로 한창 나라가 떠들썩하던 그 해 내가 느닷없이 암환자로 등록되고 수술을 받은 날이니까. 거기서부터 내 일상생활은 균열이 심해지고 심리적 갈등 이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수술 받으면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꾸준한 관리는 내 몫이었다. 항암제를 맞아야 했고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다, 버텨내기 벅차다고 탄식하면서 아픔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마침 대학병원에서 주 최하는 암환자를 위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과 만나 정보를 공유하면서 내가 짊어진 고통의 무게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더니 ..

수치, 확률 그리고 희망

수치, 확률 그리고 희망 1기, 2기, 3기, 4기라는 명확한 구분과 그에 따라 두부 자르듯 나뉘는 완치율. 암환자들은 이 기수와 완치율에 따라 자신의 남은 생명을 저울질한다. 통계적인 확률과 수치에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때론 희망의 끈을 움켜쥐기도, 때론 좌절이라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한다. 수치에 대한 두려움은 비단 기수나 완치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단 암에 걸리고 나면 무수한 수치로부터 헤어나질 못한다. 의사나 간호사의 입에서 숫자만 나오면 암 환자의 긴장은 극에 달한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 그저 수치상의 변화에 따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번 생각해 보자. 1기 환자는 열에 아홉이 살고, 4기인 말기 암환자는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릴..

유방암과 친구처럼~ 봉희은 씨 5년의 기록 “아프면 비우세요”

2015년 9월,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이라고 했다. 혹처럼 툭 튀어나와 손으로 만져지기까지 했다. 병원에서는 곧바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전절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내키지 않았다. 한쪽 가슴을 절제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수술 대신 다른 선택을 했던 이유다. 생활습관을 바꾸고, 먹거리도 바꿨다. 그러자 몸도 좋아지는 듯했다. 2017년 3월, 두 달 넘게 감기가 낫지 않았다.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구나.' 2년 만에 다시 암센터를 찾았던 이유다. 암센터에서 들은 말은 충격이었다. 암세포가 커졌다고 했고, 이제는 수술도 못 한다고 했다. 항암치료로 크기부터 줄이자고 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2회 만에 그만뒀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

독보적 암 과학자가 14년 암투병하며 알게 된 것들

“몸에서 많은 게 사라진 만큼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인문을 과학하다’ ⑦ 김규원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 ● 인생의 정점에서 만난 암세포 ● 2006년 비강암 발병… 지금껏 투병 ● 혹독한 항암 치료로 청력 잃고, 피부 괴사 ● 쌓은 지식은 무력하고 허약했다 ● 내 몸에 남아 있는 신비로운 것들 ● 암 연구 패러다임을 바꾸자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인문을 과학하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우리가 당면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문을 과학하다’는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암 이후의 삶이 더 행복해요” '김창호 씨가 사는 법'

“암 이후의 삶이 더 행복해요” '김창호 씨가 사는 법' 허미숙 기자 위암 수술 후 13년이 흘렀다. 갑상선암 수술 후 6년이 흘렀다. 그 와중에 회사까지 창업해 직원 30여 명을 둔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화제의 주인공은 비투엘물류(주) 김창호 대표이사(57세)다. 두 번의 암 수술도 거뜬히 이겨내고 회사까지 창업해 멋지게 성공시킨 주역으로 알려지면서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그 비결은 뭐였을까? 글 | 허미숙 기자 2006년 3월에…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속쓰림 때문이었다. 술 때문일 거라는 짐작은 했다. 국제운송을 담당하는 물류회사에 근무하면서 영업상 술자리는 잦을 수밖에 없었다. 2006년 3월에도 중국 출장에서 도수 높은 백주를 이틀 동안 연거푸 마셨다. 돌아오자마자 서둘..

위암 말기를 극복한 맨발의 사나이

위암 말기를 극복한 맨발의 사나이 암을 이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내가 가진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세상에 크게 말하려고 저는 북을 칩니다 5년 완치 판정 졸업장을 받았지만 암은 완치라는 것은 없습니다 평생 사는 동안 암과 동행하면서 다독거리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 입니다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비슷 했습니다 바보처럼 마음을 비우고 언제나 긍정의 힘으로 매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입니다 암을 이기는 방법은 특별하고 유별난 것이 아닙니다 너무 평범하고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힘 내시기 바랍니다 메디칼엔지니어ㅣ김동우

삶의 질 향상이 치료 목표가 된다..

작성자 라이프 김동우 [암환자 의사를 만나다] 삶의 질 향상이 치료 목표가 된다.. 평생치료를 요하는 전이성 유방암 박경화 고려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박경화 고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 축은 환자와 보호자, 의사이다. 세 축이 단단하고 균형 잡혀 있는 경우 환자의 치료 효과와 경과가 다른 환자 대비 매우 좋다. 반면 세 축 중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오래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태현 쿠키뉴스 기자 “8년 전인 2011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동네병원에서 찍은 X-ray에서 좌측 유방에 좁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중 몽우리가 커져 있어 바로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최종 진단을 받았다. 바로..

유방암과 친구처럼~ 봉희은 씨 5년의 기록 “아프면 비우세요”

유방암과 친구처럼~ 봉희은 씨 5년의 기록 “아프면 비우세요”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2015년 9월,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이라고 했다. 혹처럼 툭 튀어나와 손으로 만져지기까지 했다. 병원에서는 곧바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전절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내키지 않았다. 한쪽 가슴을 절제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수술 대신 다른 선택을 했던 이유다. 생활습관을 바꾸고, 먹거리도 바꿨다. 그러자 몸도 좋아지는 듯했다. 2017년 3월, 두 달 넘게 감기가 낫지 않았다.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구나.' 2년 만에 다시 암센터를 찾았던 이유다. 암센터에서 들은 말은 충격이었다. 암세포가 커졌다고 했고, 이제는 수술도 못 한다고 했다. 항암치료로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