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작가 2인의 생존전략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복거일 vs 다치바나 다카시
치료 거부 혹은 삶의 질 택해
암 투병 작가 2인의 생존전략
복거일씨(왼쪽)와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
간암 말기 치료 거부한 작가
복거일(10년 생존)
"글 쓰다가 죽는 게 낫다"
복거일 간암 말기 진단 10년째
복거일의 암 발병 소식이 알려진 것은 2014년이다. 그로부터 3년 전인 2011년에 그는 암이 폐에서 간으로 전이된 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가 1946년생이니 65세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간암이 전이될 경우 5년 생존율은 3%였다. 치료를 받아도 수명 연장은 6개월에 불과했다. 그 수치대로라면 암 발병후인 2016년에 그가 살아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복거일 씨
나는 복거일 씨를 2016년 초봄에 서울 무교동의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초면이었지만 내가 신문사에서 책 담당을 했기에 그의 동정에 늘 귀를 기울이는 입장이었다. 나는 그의 데뷔작 ‘비명을 찾아서’를 읽고 강렬한 충동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열성 팬이 되다시피 했다.
식당 입구에서 그는 나가고, 나는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차 한 잔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나는 그의 건강상태가 무척 궁금했다. 암을 무시하고 글쓰기에 매달리는 작가에 대한 경외심이 세속적인 관심으로 드러났다. 내가 차일피일하다보니 전화를 하지는 못했다. 그는 암 투병 이후 많은 책들을 펴냈다. 그 중에 암에 대해 언급한 책이 2권이었다.
나는 두 책을 도서관에서 단숨에 읽었다. 한 권은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2014)이고, 또 한 권은 ‘복거일 생명예찬’(살림.2016)이었다. 두 권 모두 암 환자들이 보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는 책이었다. ‘암은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었다. 자신의 투병을 드러내는 의지가 담긴 암 극복 수기와는 더 더욱 거리가 멀었다.
작가는 책에서 딸과 나눈 대화를 통해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를 밝혔다.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글 쓰는 데 쓸란다. 한번 입원하면, 다시 책을 쓰기는 어려울 거다. 암 치료 받기 시작한 작가들 결국 소설다운 소설 못 쓰고서….”
“그래도 아빠, 일단 살아야 하잖아? 그럼 우린 어떡해. 아빠가 치료도 안 받고 그냥….”
이기려고 하지 말고 안 지려고 해야지
복거일 씨는 몇몇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암을 대하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암 말기 선고를 받은 뒤 처음 든 생각이 20년 전 대하소설을 쓰기로 해놓고 3권 째를 끝으로 더 이상 쓰지 못한 것이다. 독자들과의 약속은 영영 못 지키겠구나 싶었다”
그가 병원치료를 거부하는 대신 집에서 자연치유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자연치유는 없다. 단지 진전이 늦춰지는 것 뿐이다‘라고 말한다. 아니면 식이요법에 대한 관심은 있는 지 궁금하다.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중요한 건 그렇게 해서 낫는다는 자기 최면, 믿음도 있어야지. 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경제학은 항상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적화를 하는 거야. 병은 주어진 조건이고 그럴 때 최적화가 뭐야”
“내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체력이 달려 그러는지 당기는 것 말고는 다 그대로야.”
암에 대한 그의 인식론은 유전이다. 부친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환경도 중요하다. 발암물질이 그것이다. 우리가 다세포동물이라서 세포 하나하나마다 자기가 더 번식하려고 경쟁을 한다. 암은 필연적이다. 젊을 땐 괜찮은데 나이가 들면 에러가 생겨 매커니즘이 고장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인생에서나 바둑에서나 이기려고 공격하면 위험해지게 마련이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안 지려고 해야 한다. 논쟁을 할 때에는 굳이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논쟁을 하다가 합의를 못 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신념을 갖고 관점을 얘기하면 된다. 그것이 자유주의자의 본모습이다.”
평생을 죽음에 관한 연구를 했던 정신의학자,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5단계의 심리적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거부(denial), 분노(anger), 흥정(bargaining), 침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단계를 거친다. 복거일 씨는 단번에 수용의 단계를 직시하는 것 같다.
“진단받고 온 날 나도 정신이 없잖아. 매일 잠들기 전에 릴랙싱하려고 탐정소설을 읽어. 그날도 읽고 누웠는데 가슴이 꽉 막히는 거야. 너무 답답해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 마루를 서성대면서 생각했지. 암 진단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심리적 쇼크로 말이야.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골똘히 생각했지. 그러면서 몸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해하기로 했어. 육체가 충격을 받았는데 정신에도 부조화가 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어느 날인가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데 앞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라고. 갑자기 부모님 산소 생각도 나고. 나도 몰래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거야. 그날 자리에 누워 동시 비슷한 걸 하나 썼어. 이후 가슴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더군. 마치 주술이라도 풀린 것처럼 말이야. 한동안 소설 쓴다고 시를 못 썼거든. 그런데 시가 나오는 거야. 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시를 잔 쓰잖아.”
그는 생활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고 했다. 가끔 둔중한 느낌이 오는데 견딜만하다는 것이다. 하루 평균 5~6시간 꼬박 글을 쓴다. 부인이 해주는 음식은 뭐든 잘 먹는다고 했다. 그는 투병의 고통에 대해 과도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기적처럼 그의 암이 다 나은 것은 아닐까.
삶과 죽음의 에세이
암 발병 이후 그의 사생관을 엿볼 수 있는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2016년에 발간된 ‘복거일 생명예찬’이다. 한 월간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책으로 낸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짤막하게 실었다.
Q: 병마와 싸워야 하는 인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복거일: 아픈 사람에겐 어떤 충고나 덕담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병보다는 아직 건강한 부문에 눈길을 주는 것이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Q: 소멸하기 진전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하고 싶은 운명적 과제가 있다면?
복거일: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보다 좀 여유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복거일의 생명예찬>은 암이라는 불치의 진단을 받은 후 느낀 생과 사의 에세이다. 이 책에서는 비로소 그의 진정어린 생각들이 잘 드러난다.
“여린 목숨을 지닌 생명체는 끊임없이 상처와 낡은 부분을 수리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수리에는 한계가 있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너무 낡아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된다. ”
“목숨에 관한 애착이 강한 개체일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목숨에 대한 애착이 크도록 진화했다.”
“영생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다. 낡은 몸을 재생해야 하고, 재생은 새로운 세대가 활동할 무대를 비워줘야 가능하다. (중략) 자식을 통해 재생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죽음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 사실을 잊으면 당대에 영세불변의 사회를 구축하겠다는 치명적 오만이 나와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나는 복거일씨의 이 문장 앞에서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이미 그는 죽음을 극복하며 살고 있다. 그는 소멸의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한 생각만으로 그는 영원 속을 거니는 자유인이 되어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 자신의 행위를 계속하는 것이 초인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다.
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가 살아야 할 존재의 당위성을 외치고 싶었다. 그것은 인체 메커니즘의 오류와는 관계없는 희망사항이었다. 그에게는 암과 싸운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암을 수용하는 순간부터 암과 죽음은 더 이상 동의어가 아니었다. 그의 암은 다른 발병자들에게 인식을 바꾸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암은 위협도 아니고 그것을 극복하는 도전도 아니었다.
영국학자 그리어는 13년간 암환자를 관찰한 결과 네 가지 타입으로 분류했다. 생존율이 가장 높은 타입은 투쟁적이고 대항하는 사람들이다. 부정하거나 냉정하게 수용하는 타입 등은 생존률이 높지 않다. 가장 낮은 유형은 절망형이다.
복거일 씨는 숨 쉬고 음식으로 기운을 차리고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푸른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 속에서 산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책을 썼다.보수 논객을 자처하며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를 표방하며 활발한 강연활동도 하고 있다. 그의 몸속에서 암은 어떻게 된 것일까.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그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로 암 진단을 받은 지 10년째다.
방광암 수술한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
"재발하면 삶의 질 택하겠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작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2007년에 67세의 나이로 방광암 수술을 받았다. 2008년에 문예춘추에 ‘나는 암수술을 했다’라는 수기를 연재했다. 2009년 11월 NHK-TV의 에 리포터로 등장해 세계 최고의 암 전문가들을 만나 암의 첨단정보를 소개했다. 이 두 가지 자료를 모아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청어람미디어.2012)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는 암의 정체와 본질을 추적하며 냉정하리만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암은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다. 그가 인식한 암의 본질은 무엇일까.
암에는 항생제가 명백히 효과를 발휘하는 암도 있고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없는 암도 있다. 항암제가 효과를 발휘하는 암은 소수이며 듣지 않는 암이 대부분이다. 환자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연명효과와 증상 완화에 불과하다.
항암제는 예외 없이 강한 부작용이 있다. 부작용이 심할 경우, 항암제의 효과와 단점을 저울에 올린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상당히 의문스러운 사례가 많다. 저자는 암 수술 후 일반적인 요법으로서 일정 기간 항암제를 복용했다. 앞으로 암이 재발할 경우 그는 다소의 연명을 기대하기보다는 삶의 질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암이란 애초에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사실을 우리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꿈의 신약 등장이니 꿈의 치료법 등장이니 하여 시끌벅적하게 등장했다가 잠시 후 그 신약이나 치료법의 부정적인 측면이 밝혀져 희망이 허망하게 시들어가곤 했습니다. 암 치료의 역사는 그 반복이었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인류는 암 정복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기보다, 암을 극복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이제야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암 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카시는 취재를 하면서 두 가지를 확신했다고 한다. 하나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인류가 암을 의학적으로 극복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머지않은 시기에 그는 확실히 죽을 것인데,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특별히 발버둥 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끈질긴 병이다. 이것은 생명 자체가 품고 있는 하나의 운명이다. 모든 암 환자는 어느 시점에선가 암이라는 병과 여생을 놓고 협상해야 한다. 그는 암과 투쟁하며 삶의 질이 떨어진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도쿠나가 선생한테 배운 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죽을 때 까지 사는 힘이라고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군요.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삽니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분명히 살 수 있습니다. 그 단순한 사실을 발견하고 죽을 날까지 제대로 사는 것이 곧 암을 극복하는 길이 아닐까요.”
그가 취재 과정에서 방송국의 동료였던 치쿠시 데츠야씨가 암으로 사망했다. 치쿠시는 암 발병 이후 ‘잔일록’(殘日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암 환자가 되면 다양한 대체요법을 만나게 된다. 암을 낫게 한다는 고가의 약부터 치료법까지 홍수를 이뤄 암치료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게 한다. 치쿠시는 이것을 일러 ‘황금 지푸라기가 넘쳐나는 세계’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는 천연자원 저장소가 있다. 이곳에는 식물이나 버섯 등 전세계 유기물을 수집해 항암물자를 탐색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 건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다카시가 내린 암의 정체를 그대로 옮겨보자.
<암은 나의 외부에 있는 적이 아니다. 나의 내부에 있는 적이다. 당신의 암은 당신 그 자체다. 암에는 생명의 역사가 담겨 있다. 암의 강인함은 당신 자신의 생명 시스템의 강인함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암 치료는 결코 쉬울 수 없다. 암을 죽이는데 지나치게 열중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결과이기 쉽다. 겨기에 암 치료의 커다란 패러독스가 있다.>
키워드##암투병#복거일#다치바나다카시#생명예찬#지자체경제신문
이점석 기자 chinalee007@naver.com
'투병기 모음 > 투병기 (펌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방암 수술 후 5년 최현정 씨가 사는 법 (0) | 2020.10.14 |
---|---|
“간암 말기 환자 ‘완치’ 기적”…맨발걷기의 놀라운 효과 (0) | 2020.09.28 |
비강상악동 미분화암과 14년… 서울대 약대 김규원 명예교수가 사는 법 (0) | 2020.09.22 |
아품도 축복이다. (0) | 2020.09.21 |
수치, 확률 그리고 희망 (0) | 2020.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