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고? 그래? 어차피 누구나 한 번 죽는데 하느님 뜻이라면 죽지 뭐." 

2014년 4월. 서울성모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뒤 남편에게서 내가 위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무덤덤했다. 남편은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사는 게 많이 힘들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6년 6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너무나 따르는 외손녀가 잘 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지난 7년 사이에 수술을 세 번 했다. 2014년 4월 위암 3기 진단을 받아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고, 2015년 2월에는 목에서 혹을 떼냈다. 암이 아니라 양성 종양이었지만 수술 중 혀 신경이 손상돼 1년 정도 맛을 못 느끼고 말할 때 혀 짧은 소리를 내야 했다.

그리고 다시 1년 4개월 뒤인 2016년 4월에는 유방암 환자가 됐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지금까지 재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제 완치 판정을 받을 날이 1년 남짓 남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암을 겪고 나니, 남은 인생이 덤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게 된다. 매일 기도하면서 감사하고, 저녁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 하루를 선물로 주신 것에 감사 기도를 드린다.

위가 없는데도 잘 먹을 수 있고, 숨을 내 맘대로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그 동안 교만하게 살았다는 걸, 암에 걸린 뒤 깨달았다. 감사할 게 너무나 많았는데 욕심 때문에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게 미웠던 남편이 날 살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한 걸 생각하면, 집안 일을 안 도와주고 게을러도 다 용서가 된다. ‘그저 내 옆에서 숨만 쉬고 있어 주면 되지’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7년 전 나는 집 근처 작은 검진센터에서 유방결절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보러 간 자리에서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나중에 알았지만 남편은 그 때 이미 내가 위암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남편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위암 명의가 있다는 서울성모병원 예약을 잡은 뒤, “월차도 안 냈다”며 회사로 출근하려는 나를 억지로 끌고 갔다. 검사 후 병원 복도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는 데 느낌이 안 좋았다.

‘만약 암이면 어떡하지?’ ‘할 수 없지. 치료 받으면 되지. 죽기야 하겠어?’

예상이 맞았다. 남편이 울면서 “당신, 암이래”라고 했다. “그래? 치료받아야지 뭐.” 두려움은 없었다.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다고 겁을 줬다. 위를 다 잘라야 하고, 식도도 잘라낼 수 있다고 했다. 흉곽을 열어 갈비뼈를 부러뜨린 뒤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흉부외과와 협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도 고통스러울텐데 항암까지 할 수 있을까?’ 암은 다 죽는 병인데, 수술 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는데......언제 죽을지 시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미련이 없었다.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더니 가족들이 난리가 났다. 다른 대학병원에서 또 MRI와 펫 씨티를 찍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위암 3기C. 림프절에 전이가 됐고 비장이 안 좋아 다 떼어내고, 식도에도 전이가 됐다면 식도까지 잘라야 했다. 의사에게서 수술 계획을 들으니 암담했다. “위를 다 잘라내고 식도와 소장을 잇는 수술을 할텐데, 만약 복막에도 암이 전이돼 있으면 수술은 포기할 수 밖에 없어요.” 1차로 복강경 수술을 시도해서 복막 전이가 확인되면 수술을 중단하고, 복막 전이가 없으면 위를 잘라내고 식도와 소장을 잇는 수술을 8시간 정도 진행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수술 시간이 길어지길 바랬다고 한다. 빨리 나오면 수술을 못 받은 거니까,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몇몇 대학병원에서 복막의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계획까지 세웠다.

막상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나니 담담했다. 슬픈 생각도 안 들었다. 죽는다는 생각보단 ‘이겨내면 되지 뭐’, ‘재발 확률이 70%라면 재발 안 되는 30%에 들면 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 아들 딸이 얼마나 웃기는 얘기를 잘 하는지 많이 웃었다. 내 침대를 수술실로 옮기는 병원 직원이 “여기서 4년 근무하면서 많은 분을 수술실로 데려갔는데, 암 수술 받으면서 웃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신기해 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날 살려주려고 수술실에 데려가는 거잖아요. 그게 뭐 슬픈 일입니까?”

수술실에서도 겁나지는 않았다. 수술대에 온열 장치가 돼 있었는지 등이 너무 따뜻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레지던트, 간호사들이 수술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또 농담을 했다. “제가 아무에게나 속을 안 보여주는데 오늘 다 보여주게 됐네요. 개복 수술이라서 뱃속을 다 열어본다면서요?” 나도 웃고 의료진도 함께 웃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나는 마취 상태가 됐다.

 

이 체험 수기는 최은애(가명, 56세)님과 인터뷰 한 내용을 본인 동의를 얻어 재구성한 것입니다. 최은애 님은 2014년 위암 3기로 위 전절제 수술을 받았고, 2016년엔 유방암으로 수술 등 치료를 받고 5년 완전관해 판정을 1년여 앞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