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치료와 최상의 교육,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
"담도암 환자 중에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만 믿고 지레 치료를 포기하려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인터넷 정보는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효과로 환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잘못된 정보가 환자를 벼랑으로 내몰기도 하거든요. 막대한 비용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치료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허위 정보에 속아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달려온 기색이 역력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품새며, 자리를 안내하는 몸놀림, 빠른 말투에서 김경식 교수(간담췌외과)의 시간표가 얼마나 숨 가쁘게 돌아가는지 또렷이 감지된다. 수술이 늦어져 점심도 못 챙겼다니,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런 느낌 탓일까? 사진기자의 명함을 받으며 김 교수가 건넨 한마디가 유난히 낯설게 들린다. "저도 취미가 사진입니다. 자연, 그 중에서도 별 찍는 걸 좋아해요." 분초를 쪼개 사는 처지에 별을 보러 다닌다고?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그런 짬을 내는 거지? 궁금증 게이지의 바늘이 한 뼘쯤 쑥 올라간다.
간담췌외과 김경식 교수
별을 보러 다니신다고요?
그거 시간이랑 품이 제법 드는 취미일텐데요.
자연, 특히 별 사진을 찍습니다. 하늘이 잘 보이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빛이 없는 데를 찾아다니고, 누구랑 같이 다니지도 않아요. 어떨 때는 무섭기도 하지만, 취향이 다르면 서로 방해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시작한 지는 꽤 됐는데, SNS 같은 데 올리거나 무슨 전시회에 내보내거나 하진 않아요. 아직 그만한 수준이 안 돼서요. 시간에 쫓기는 건 사실이지만, 의지가 중요하죠. 여유는 만들어내기 나름이니까요.
혹시 간과 쓸개, 췌장 가운데 비교적 한가한 분야를 보는 건 아니실 것 같은데요.
수술 건수도 비교적 적지는 않은 편입니다만, 간담췌 영역은 가리지 않고 다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는 게 옳다고 믿습니다. 간담췌는 해부학적인 구조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냥 한 동네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부 담도암과 췌장암은 수술 방법도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 "난 담도암 전공이어서 췌장암은 몰라"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그래도 굳이 헤아리자면, 담도암을 가장 자주 봅니다. 내과에서 발견해서 보내주는 환자들이 많거든요. 간암센터장을 맡고 있지만, 간은 수술 외에도 다양한 치료법이 있는 데다가 저 말고도 담당하는 외과 선생님들이 세 분이나 계시거든요.
세브란스 초창기에 본국에서 의사로서 얼마든지 높은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분들이 조선이라는 낙후된 나라에 온 까닭은 무엇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누누이 강조했어요.
그때는 도대체 그들과 내가 무슨 상관인가 했지만, 차츰 그 정신이 스며들어 무언가 남들에게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수술이 많다고요? 담낭암이나 췌장암은 워낙 치명적이어서 칼을 대봐야 소용없다던데요.
담낭암은 예후가 몹시 나쁜 게 사실입니다. 6개월 정도면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2013년에 수술한 환자인데, 간과 대장까지 전이가 돼서 더없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 치료를 했더라면 훨씬 쉬웠을텐데, 환자가 지레 포기하고 시간을 낭비한 탓에 먼저 방사선화학요법을 쓰고 나서야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대장과 간을 잘라내는 큰 수술이었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아서 지금껏 잘 지내고 계십니다. 덤으로 산다면서 항상 고마워하시고, 병원에 오면 빼놓지 않고 인사하고 가시죠. 물론, 누구나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쪽으로든, 부정적인 쪽으로든 부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섣불리 예단하거나 일반화해선 안됩니다.
약력을 찾아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교육에도 신경을 많이 쓰시더군요.
전임의 시절, 은사이신 김병로 교수님 영향이 커요. 말하자면 도제 시스템을 통해 배운 셈이죠. 의과대학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일하시던 교수님이 컨퍼런스에 데리고 다니셨어요. 새로 나온 교육이론 같은 걸 논의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였어요. 그때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 뭐라고 이야기할 수준이 아니라서 잠자코 따라다녔죠. 그때마다 생각했어요. '저런 세상도 있네. 나는 간담췌 수술만 생각하고 있는데···. 아, 교육 시스템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덕분이었을까요? 저는 교육, 그 중에서도 전공의 교육제도에 관심이 많아요. 교육 시스템이 정말 체계화 되어있느냐, 그럼 그런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과연 역량 있는 의사가 되느냐 하는 문제죠. 그걸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일부터 최대한 힘을 기울여볼 생각입니다.
글쎄요,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 정말 있기는 한 걸까요?
인지적 도제제도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전문가가 먼저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행동하는지 보여주고, 학생으로 하여금 그걸 관찰하고 숙고하면서 인지적인 기술을 습득하고 자율적으로 과제를 해결해가게 하는 거죠. 우리는 '도제'라고 하면 "교수가 이렇게 수술하라면 할 것이지, 무슨 잔말이 많아!"라고 윽박지르는 장면부터 떠올리지만, 그건 제도의 참뜻과는 동떨어진 형태입니다. 교수는 "나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방법을 없을까?"라고 묻고, 학생은 "논문과 책에는 다른 방법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라고 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술이 전수되고 능력이 길러지는 게 진정한 도제제도의 모습입니다.
그림이야 좋은데, 그 뜻을 이루는 과정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좋은 제도를 마련해 정착시키는 과정은 적잖이 곹오스럽겠지만, 합당한 방향이라면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하고 설득하면서 그쪽으로 나가야 할 겁니다. 저희가 의예과에 다니던 시절, 교수님들은 세브란스 정신을 이야기하는 데 강의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세브란스 초창기에 본국에서 의사로서 얼마든지 높은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분들이 조선이라는 낙후된 나라에 온 까닭은 무엇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누누이 강조했어요. 그때는 도대체 그들과 내가 무슨 상관인가 했지만, 차츰 그 정신이 스며들어 무언가 남들에게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교육 행정가나 철학자가 되셨어도 잘하셨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는 법대에 갈 마음으로 문과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어린 생각에, 법을 다루는 이는 누군가에겐 칭찬을 받겠지만 상대편에게는 더없이 못마땅한 존재가 되기 십상이겠더라고요. 반면에 의사는 좀 다를 것 같더군요. 아버님도 의사셨는데, 여기저기 봉사하러 다니시는 모습을 보니까 숱한 이들의 적이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이과로 방향을 돌리고 이 길에 들어섰죠. 앞으로 얼마나 더 환자를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은퇴하고 나면 <어느 외과의사의 경험(One Single Surgeon's Experience)> 같은 책을 쓰고 싶어요. 미국의 위대한 외과의사이신 크리스토퍼가 쓴 100페이지 남짓 되는 서적인데, 자신의 실수들을 정리하고 후배들에게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하는 글입니다. 완벽한 치료를 하느라 최선을 다했지만, 제게도 예상치 못한 사태로 아찔했던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출처 : 세브란스 웹진 VOL.212>
[출처] 췌담도 수술과 치료의 명인 김경식 교수|작성자 암지식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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