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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밑 인생도 알게 해 준 영광의

암사랑 2019. 10. 21. 08:43

“물 밑 인생도 알게 해 준 영광의

  • 건강다이제스트


  
 

생사의 기로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시각각 위협하는 생사의 분침 소리에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느 날 갑자기 백혈병 진단을 받고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
백혈병과 친구처럼 살아온 6년….
지금도 여전히 항암제를 먹고, 5년 완치도 없는 임상환자로 살고 있지만 성악팀을 만들어 노래봉사를 하고 백혈병 환자를 위한 상담봉사도 하는 사람! 한주리 씨(56세)를 만나봤다.
글 | 허미숙 기자

 

2013년 4월에 느닷없이 백혈병!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 특별한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의례적인 체크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염증 수치가 높다면서 몇 번이나 피검사를 했다.

그런 다음 한주리 씨가 들은 말은 너무도 낯설었다. 백혈병이라고 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고 했다. 특별한 증상도 없었는데… 아무런 조짐도 없었는데… 참으로 느닷없는 통보였다. 그것도 나이 50에. 2013년 4월 25일에.

그 후의 일은 다들 짐작할 것이다. 사망선고로 여길 것이고, 절망할 것이고, 눈앞도 캄캄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한주리 씨 대답은 예상 밖이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일찍 부르는구나 했다.”고 한다.

쉽게 납득을 못하자 한주리 씨는 “30대 중반 인생의 큰 위기를 겪으면서 흔들릴 수 없는 삶의 이정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앙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안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았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다.

백혈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주리 씨는 “나도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겠구나 솔직히 기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럴 수 있었을까? 도대체 30대 중반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30대 중반의 어떤 깨달음  

한주리 씨는 신앙을 빼면 할 말이 없다는 사람이다. 신앙은 그녀의 모든 삶을 지배한다. 그녀의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대상이고, 그녀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도 신앙 안에서 흘러간다. 한주리 씨는 “30대 중반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을 때 구원의 손을 내밀어준 것이 신앙이었다.”고 말한다.

한주리 씨는 2016년 쁘리모 아모레라는 성악팀을 만들어 한 달에 한번 노래봉사를 다니고 버스킹 공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그녀에게는 너무도 절박했다. 인생이 무너졌다. 한주리 씨는 “일 중독에 빠진 남편과의 갈등이 문제가 됐다.”고 말한다. 늘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이었다. 일요일도 없었고, 크리스마스도 없었다. 13년이나 쫓아다닌 남편이 맞나 싶었다. 가정은 나몰라라 일에 빠진 남편이 야속했다.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고, 평범한 부부의 일상을 꿈꾸었던 그녀에게 남편은 용납이 안 됐다. 그러면서 삶의 의미도 잃었다.

한주리 씨는 “진짜 믿음이 어떤 건지 깨닫지 못했다면 지금의 가정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태신앙인이었지만 결코 깨닫지 못했었다. 진짜로 믿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진짜로 믿는다는 것은 이 땅에 실제로 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한다는 거였다. 지금도 이 땅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전부를 맡기고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 원수도 사랑해야 하는 거였다.

이 같은 깨달음은 세상을 180도 달라보이게 했다. 일의 종으로 사는 남편도 불쌍해 보였다. 그때부터였다. 바빠졌다. 믿음의 대상을 똑바로 알기 위해 바빠졌고, 믿음의 대상을 제대로 전파하기 위해 바빠졌다. 그러자 남편도 변했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위기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고, 한주리 씨는 신앙 안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았다.

백혈병이 준 또 다른 깨달음

013년 4월에도 마찬가지였다. 믿음을 전도하는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이던 때였다. 그런 와중에 받은 백혈병 진단! 한주리 씨는 “이 또한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한주리 씨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백혈병이라는 무거운 짐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2013년 4월 25일,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한주리 씨 삶에도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날마다 글리벡이라는 항암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골수에서 나오는 돌연변이 암세포를 제거하는 표적항암제였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골수가 망가져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완치가 없는 병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주어진 삶이고 살아내야 할 삶으로 여겼다.”는 한주리 씨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신앙의 힘이 더 앞섰다고 말한다.

그래서였을까? 글리벡을 복용하면서 생긴 크고 작은 부작용 앞에서도 담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주리 씨는 백혈병으로 인해 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인생 2막이 열렸다고 말한다. 일밖에 모르던 남편 김중권 씨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 갑자기 늙어버렸고, 확 변해버렸다.
· 안와 부종이라고 해서 눈이 튀어나오듯이 붓고 볼도 부었다.
· 피부가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멜라닌 색소가 없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 피부도 얇아져 걸핏하면 멍이 들었다.
· 다른 암이 생길 확률까지 높은 축에 들었다. 2014년 대장내시경으로 떼어낸 대장용종이 대장암이었다. 2016년 유방에 혹이 생겨 맘모톱 시술을 하기도 했다.

한주리 씨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더 감사하다.”고 말한다.

백혈병이 아니었으면 물 위의 삶 밖에 모르고 반쪽짜리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백혈병을 통해 물 밑의 삶도 알게 돼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백혈병도 축복이다. 영광의 초대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인생을 살게 해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날마다 열심히 전도를 하러 다니고 봉사도 하는 이유다.

2016년부터는 ‘쁘리모 아모레’라는 5명으로 구성된 성악팀도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으로 요양병원으로 노래봉사를 다니고 버스킹 공연도 한다.

백혈병 환자를 위한 상담봉사도 한 달에 한 번씩 한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앞서서 겪었던 정보도 공유한다. 

2019년 8월 현재 한주리 씨는…

한주리 씨는 “오히려 백혈병 진단 후 더 바빠졌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며 “ 백혈병으로 인해 인생 2막이 새롭게 열렸다.”고 말한다.

백혈병과 친구처럼 살아온 6년! 지금도 크고 작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걸핏하면 얼굴이 붓고 다리 쥐가 며칠 동안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 또한 삶의 한 페이지로 여긴다. 여전히 전도를 다니고 노래봉사도 다니고 상담봉사를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산다.

한주리 씨는 “병원 갈 일이 자주 있어서 시간이 모자란다.”며 아쉬워한다. 3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를 하고, 6개월에 한 번씩 유전자검사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검사 결과 체크도 잊을 때가 있어서 담당주치의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로부터 걱정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한주리 씨는 “백혈병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아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자.’ 그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생사의 적수 앞에서 힘들어 할 암 환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암으로 인해 절망 대신 인생 2막을 열었으면 한다. 이때 신앙도 큰 위로가 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건강다이제스트  kunkang198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