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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혼례 아름다운 풍속 신랑 다루기

암사랑 2017. 11. 6. 11:00

전통 혼례 아름다운 풍속 신랑 다루기|◈─……追憶의 사진

다모아                              http://cafe.daum.net/fateful-119/AnTO/2909 

 

 

 

 

  

          

          전통혼례    한국민속촌 전통혼례

    60년도 그 시절은 시골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댁에서 와서 전통 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아름다운 전통 혼례 풍속과 신랑 달기

                                                                    

                                                                         黎明/김진호


1970년 초반까지 만 해도 시골 마을은 결혼을 하면 신랑 달음이라 하여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아름다운 풍속이 있었고 조선 후기 때부터 내려온 풍속이었다.


당시 혼례는 남자는 사모관대 여자는 족두리로 치장하고 결혼은 신부댁에서 신랑 이 와서 결혼을 하는 전통 혼례뿐이었다.


전통 혼례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혼례로 사모관대는 벼슬한 사람 족두리는 왕비만 할 수 있는 특권이지만 특별히 결혼 날만 국가에서 허용한 배려라고 한다. 결혼을 마치면 신부는 바로 신랑 댁에 가서 신랑 집에서 첫 날밤을 마치고 3 일 후 반드시 신부집 첫나들이 방문을 한다.


지금은 신랑 신부가 결혼을 마치면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그렇지만 그때는 신혼여행이란 특수한 사람이 아니면 신혼여행이란 단어도 몰랐던 춘궁기 보릿고개 시절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져 전통혼례식이 살아지고 대개는 혼례는 결혼식장에서 결혼 하지만 지금은 신랑 달기란 단어도 생소하고 아마 현대 젊은 신랑 신부들은 시골 동네 주민과 어른들이 한자리에 신랑 달기 더욱 생소한 말 일 것이다.


전통으로 내려오는 신랑 달기는 조상들의 지혜와 풍자가 담긴 아름다운 풍속임 에 틀림없다. 신랑 달음은 옛날에는 10 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조상들 은 신랑 달음을 통하여 신랑에게 "효와 인내심과 삶의 지혜"를 심어주기 위함이요 또 신부 댁의 끈끈한 가족애와 신부 댁 마을 사람들을 상면하고 친분 유대를 맺기 위한 전통적 풍속임에 틀림없다.


신랑 달음은 결혼 후 신랑이 3일 후에 신부 댁을 첫 방문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신부 댁 마을 청장년들이 초저녁 무렵부터 삼경 전까지 신부 댁에서 신랑을 마을 사랑방까지≪옛날 시골 동네엔 부잣집 사랑체가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담소하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동네 마을 회의도 하고 그랬다.≫ 동행하면서 동행 도중 짓궂게 행하여지고 사랑방에 도착하면 신랑 포대기 띠로 (옛 시골은 아기 업을 때 포대기에 메는 2m 정도 되는 긴 띠 가 있었다)


신랑 발을 엮어 건장한 청년이 신랑 발을 어깨에 메고 방망이로 신 랑 발을 달음질이란 절차가 시작이 된다. 신랑 달음을 할 때는 마을 청장년 중에 혼인을 한 인품과 덕을 갖춘 모범된 사람이 상좌로 선정되어 마을을 대표하여 상석에 앉아서 위엄을 갖추고 상좌가 질문과 신랑의 답변 속에 풍자가 담긴 질문을 하여 대개 질문은 신부 댁을 공경하고 처 부모님 에게 효를 잘하란 질문 요지로 신랑이 답변이 소홀하고 답변을 잘못한다는 구실로 신랑 발을 방망이로 달음질을 한다.


따라서 마을을 대표하는 상좌와 신랑과의 묘한 자존심 대결이 은연중 있기 마련이다 똑똑한 신랑이 오면 마을을 대표하는 상좌와 신랑과의 임기응변 풍자적 질문과 답변의 맞대결 자존심 대립 장이 되기도 한다.


신랑 달음 할 때는 마을 주민들이 다 모이는 마을의 축제이기도 했으며 신랑 달 음이 끝나면 신부 댁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신랑과 마을 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지내지만 철칙은 신랑 신부를 배려하여 절대 삼경을 넘기지 아니한다.


신랑을 달음을 하게 되면 신랑의 면모를 볼 수 있고 신랑의 인품을 간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서 신랑이 부족한 면이 보이면 신부 댁 마을 분들이 충고와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옛 조상님들의 슬기가 담긴 아름다운 풍속임에 틀림이 없다.


어느 날 나는 공교롭게도 우리 마을에 새로 이사 온 댁 따님이 결혼을 하여 3일 후 신랑 달음질 상좌로(신랑 달기 상좌는 보통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인품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나 나는 그 당시 미혼자로 자격이 없으나, 동네 어른들이 회합을 하여 특별히 모범 청년으로 인정했는지 나를 선정했다.) 나는 상좌로 선정이 되어 신랑 달음을 하게 되었다.


우리 마을 신랑 달음질 풍속은 이러했다. 초저녁이 되면 신부 댁에 사전에 통보하고 시간이 되면 마을 청년들이 신부 댁에서 마을 사랑방까지 신랑을 동행하게 되는데 동행하는 도중에 마을 청년들 이 짓궂은 행동과 장난을 많이 한다.


신부 댁에서 신랑을 건장한 마을 청년이 신랑을 업고 나오지만 신부 댁 문 밖을 나오게 되면 신랑을 내려놓고 걷도록 하고 마을을 한 바퀴 돌게 하면서 마을 입구에 큰 절을 하게 하고 앞뜰 동산에 또 개울을 맨발로 걷게 하고 시골 공동 화장실에 큰절을 하게 하는 등 사랑방까지 동행하면서 짓궂은 장난을 많이 한다.


이것은 예부터 내려온 마을 전통으로 아마도 인내심과 덕성을 일깨워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날 나는 마을을 대표하여 상좌로 근엄하게 상좌 석에 앉아 있는데 신랑이 사랑방에 들어올 즈음에 청년들의 짓궂은 장난에 신랑이 화가 났는지 심한 상스런 욕을 하는 것이 아닌가........... “XXX 시 XXX 상스런 욕을 했다”


그래서 나는 신랑에게 신랑은 신랑 달음질할 만한 위인이 아니며 자격이 못된다며 호되게 꾸짖고 청년들에게 어서 신랑을 돌려보내라고 명했다.


온 마을 남녀노소 어른들까지 다 모인 장소에서 신랑이 쌍욕을 했으니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분위기는 일순간 정적으로 삭막했다.

이때였다 조용히 잠잠한 순간 처음 보는 신부 댁 손님으로 오신 부인이 위기 를 모면한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잠시만요 상좌님 쌍욕은 제가 시켰습니다. "

" 쌍욕을 하면 신랑이 액땜을 한다기에 ~~~ " 제가 시켰습니다 "

" 죄가 있다면 제가 있습니다"

" 신랑이 싫으면 저를 달음질하세요"

일순간 마을분 들의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분은 처음 보는 부인이었는데 신부의 올케 언니가 되시는 분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부 댁이 우리 마을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올케가 서울에 서 거주하는 하는 바람에 처음 보는 부인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부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을을 대표하는 상좌로써 마을의 위엄과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신랑의 행동을 받다 들일 수 없었다.

"사모님 그러나 신랑의 이런 행동은 어른들이 계신 성스런 곳에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

이때 부인은 또 한 번 지혜와 유머로 위기 모면을 발휘한 것이다.

"상좌님 제가 시켰는데 그럼 난 시집에서 쫓겨나요 "

"전 과부는 싫거든요 제가 시집 한 번 더 가야 하나요?

부인의 재치와 유머 있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좋습니다 사모님 액땜을 했으니 신랑이 정중히 사과는 해야겠죠?”

이때 신랑은 정중히 사과를 했다

"제가 순간적으로 경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를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격려의 박수가 터졌다.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신랑을 매달고 달음질을 할 수가 없었다.

신랑 매달고 달음질은 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과 덕담을 나누고 자중은 신부 측 올케의 입담으로 화기 애애 분이기 속에서 훈훈한 정담을 나누었다.


나는 신부 올케와 그런 인연이 되어 부인의 제부가 되었다 부인의 중매로 부인의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 그 부인이 처형이 되었으니 인연이 란 하늘이 맺어준다고 했던가...


나는 그 신랑의 사돈이 되었고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신랑 신부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었고 큰 딸과 둘째 딸은 시집을 가고 아들은 장성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 신랑 사돈과 가끔씩 소주를 나누면서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가끔씩 폭소를 터트린다. 결혼 풍속도 전통혼례 신부가 연지곤지 찍고 정취 있는 시골 마당에서 성스런 혼례를 올렸는데..! 현대 문화에 밀려 이젠 결혼식장에서 치르고 뒤도 안 돌아보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들의 모습들 그리고 이혼율은 증가한다는 소식들 씁쓸하기만 하다.


운치가 있고 풍자적인 신랑 달음질 선조들이 효와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 옛 풍속 지금은 살아진 "신랑 달음질" 그 소중한 전통이 아쉽기만 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심과 인간애 삼강오륜(三綱五倫 )을 모르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 아닌가?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을 온실 속 화초처럼 오냐오냐 자식 교육이 심각한 수준으로 뭐가 옳고 그름 자식들 교육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며칠 전 식당에서 어린아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부모가 저지하지 않아 보다 못한 손님이 아가야 그만 뛰어라 말리다가 부모와 손님 간 말다툼으로 칼부림까지 경찰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이러니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뭐가 옳고 그름을 모르는 사회악이 심각한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지나가다가 얼굴 쳐다보았다고 젊은이가 왜 쳐다보냐며 어른을 폭행하고 세상이 무서워졌다.


옛 정취 60년도 70년도만 해도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공경하고 스승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 존경심과 어른을 공경하고 효의 근본이 있었으나, 현 사회에는 효의 근본이 점점 살아지고 자식이 늙은 부모를 버리는 비정한 천륜도 없고 버려진 부모는 자살했다는 비보가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스승을 폭행하는 등 절대 있을 수 없는 패륜적인 일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자식 교육 인간의 존엄성 효의 근본 사상 교육은 부모의 책임이다. 

부모라면 자식 훈육 교육을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 옛말에 엄부(嚴父) 밑에 효자(孝子) 난다고 했고 효자 집안에서 효자가 난다고 했다. 부모들의 귀감이 되는 올바른 행동이 자식 교육의 근본이 아닐까 깊이 상량해 본다.


           효자 DNA      효자와 불효자(효도와 불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