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타/정겨운 사진들

지게부대

암사랑 2016. 12. 31. 07:30

지게부대|◈─……追憶의 사진

산사랑맨                     http://cafe.daum.net/fateful-119/AnTO/2734 

 

지게부대 6.25전쟁의 잊혀진 영웅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6.25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엄연히 계심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6.25 한국전쟁

은 점점 잊혀져 가는 역사적 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6.25전쟁 당시를

돌이켜보게 해주는 글을 올려봅니다. [역사채널e]에서 방영한 잊혀진 영웅 지게부대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게부대란 1950년 7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공포한 긴급명령 제6호 ‘징발에 관한 특별조치령’에 따라 각 지역에서 동원

된 민간인들이었습니다. 군인 징집대상 연령이 넘은 35-60세의 인력으로 편성된 지게부대는 '노무단', '근무단', '보국대'라

는 공식 명칭보다는 지게를 지고 전쟁터를 누비는 모습 때문에 지게부대로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지게부대 6.25전쟁의 잊혀진 영웅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전투 보급품을 최대한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국

토의 70퍼센트가 험한 산악지대인 만큼 물자를 운반하는 데는 최악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력이

부족했던 미군은 원활한 보급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민간인 인력을 요청했고, 1950년 7월 26일 공포된 [징발에 관한 특

조치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민간인이 징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15세였던 진복균씨의 증언에 따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방 산악지대 고지까지 M1 실탄이 든 철통 2개를 멜빵에

 짊어지고 기어오르곤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전투지대에서 불순한 기후와 험난한 지형을 무릅쓰고 자동차 수송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보급품을 운반했습니다. 그

리고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은 민간인 수송단은 1951년 7월, 군단 예하의 한국 노무단으로 재편됩니다. 그들은 전투물자가

 필요한 모든 전쟁터에서 탄약, 연료, 식량, 보급품 운반 및 진지공사, 부상자, 전사자 후송 등 모든 병참을 담당했고, 최대한

많은 양을 빠르게 나르기 위해 맨몸의 이들이 택한 도구는 바로 지게였습니다.

 

 

알파벳 A처럼 생긴 지게를 사용한다고 해서 정식 명칭보다 A Frame Army, 지게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불렸던 지게부대는 유엔군과 함께 온 전장을 누비며 한국전쟁을 치른 숨은 힘이었습니다.

 

 

지게부대원들은 매일 10마일(16킬로) 정도 떨어진 고지로 100파운드(45킬로) 정도의 보급품을 운반하고 되돌아왔다고 합

니다. 미8군 사령관 제임스 A. 밴플리트는 “만일 이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해야만 했

을 것"이라며 그들의 활동을 크게 치하했습니다. 

 

 

하지만 본디 35-45세의 남성으로 제한한 것과 달리 지게부대에는 10대 소년부터 60대 이상의 노인까지 징발됐습니다. 당

시 캐나다 참전용사였던 빈스 코트니는 “100명 가량의 한국인 짐꾼이 배치됐는데, 15살부터 65살까지 다양했고 무장하지

않았지만 우리와 함께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박격포는 물론 76.2밀리 곡사포 등 매일 위험하고 무거운 물품을 날라

야 했습니다. 당시 15세 어린 소년이었던 진복균씨는 어른들은 박격포탄을 지고 자신은 실탄을 날랐지만 기운이 달리다 보

니 픽픽 쓰러졌다고 합니다. 힘들고 무섭고 배고팠지만 말도 잘 안 통했으니 그 어려움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

다.  

 

 

그들은 철모는커녕 흰색 무명바지, 학생복 등 징집당했을 당시에 입었던 옷 그대로의 차림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며, 눈에 잘

띄는 복장의 노무대원들은 적에게 총알받이로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기붕 전 국방장관에 따르면, "동원된 노무자

들의 대우가 제일 나쁘다는 곳을 찾아가보니 부식이라고는 썩은 파, 배추 같은 것, 통조림 1일 7인당 한 개였다"고 했을 만

큼 먹을것도  변변치 못했습니다.   

 

 

지게부대의 후신인 주한미군 한국근무단에 따르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이렇게 동원된 인원은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 30여만 명 중 기록에 남은 희생자는 사망자 2,064명, 부상자 4,282명, 실종자 2,448명 등 모두 8,794명입니다. 그리고 살

아남은 자의 귀향길에는 종군기장, 징용해제통지서, 열차승차권이 전부였다고 하니, 나라를 위한 희생이었다고는 하지만

 마음이 얼마나 허망했을지 여느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겠지요.    

 

 

6.25전쟁 중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던 지게부대는 지금도 여전히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단순 노동력으로 치부되며 잊혀진

영웅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6.25전쟁조차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저마다 최대한 자신의 힘을 보탰던 작은 영웅들의 삶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세계 여기저

기에서 갖가지 이유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희생자는 언제나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이라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픕니다. 누구도 두 번 다시 이런 불행을 겪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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