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았다고 방심하는 순간 암은 다시 나타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웠던 6개월의 항암 치료가 끝나고 요양 기간
을 거쳐 일상에 복귀하게 되자 또다시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일상 복귀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예전과 거의 비슷하게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건강을 되찾고 무리 없이 일을 해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다. 도처에 산재한 유혹이 그것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자네 좋아하는 곱창요리라도 먹으러 갈까?” “영재, 오늘 시간 있나? 괜찮으면 술 한잔 하지.”
전과 다름없는 생활로 돌아오자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이다. 이런 제안이 있을 때마다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편의에 따라 쉽게 망각하는가에 대해 놀라게 되었다. 대장암과 신장암을 이겨낸 지 2년 6개월이 흘렀을 뿐인데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발암 요인이 되는 음식을 먹자고 제안해오는 것이다.
대장암의 발병 요인은 잘못된 식생활, 즉 기름진 식사와 탄 음식 등이 원인이다. 술도 발암 요인으로 밝혀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하다는 친구 녀석들조차 때때로 내가 암 환자였다는 사실, 그것도 곱창과 같은 기름진 음식과 술을 즐기다 암이라는 손님과 싸우게 됐다는 것을 잊은 듯했다.
이런 제의를 받을 때마다 나는 흔들리곤 한다. 지글지글 불 위에서 볶아지는 곱창 냄새가 기억의 저 끝에서 불쑥 솟아나면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가는 바람에 한잔 하자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어진다. “한 번인데 어떻겠어. 설마 이 정도 먹는 걸로 암이 재발하기야 하겠어. 2년 6개월 동안 참아왔으니 한 번 정도는 먹어도 별 상관이 없을 거야.” 때를 맞춰 마음속의 악마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럴 땐 걸음을 멈추고 크게 심호흡을 해야 한다. 그리고 머리 속에 힘들었던 암 투병 기간을 떠올려야만 먹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내고 친구들의 제의를 거절할 힘이 생긴다. 2년 6개월이란 기간은 암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이긴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적어도 2년 4개월의 시간을 더 보낸 후에야 완치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생각에 그토록 좋아하던 곱창을 먹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육식과 술을 전적으로 안 먹은 것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먹던 육식은 줄이고 술은 어쩌다 한 번 맥주 한 잔으로 마감한다. “암 한 번 걸렸었다고 너무 몸 사리는 것 아냐? 이제 다 나았잖아. 먹고 싶은 걸 못 먹어도 병이 된다던데. 그토록 좋아하던 술이 그립지도 않아?”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친구는 암이 얼마나 무서운 질환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자네, 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을 예방한다며 운동을 시작한 걸로 아는데, 그거 그만둔 지 얼마나 됐지? 자네야말로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거 아닌가? 설마 암이 한두 달 운동했다고 피해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암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네. 미리미리 예방하는 게 항암 치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쉽고 현명한 일이야. 그러니 후회하기 전에 빨리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발암 인자를 제거하도록 해.”
수술 후 항암 치료가 끝나고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또 다른 암 치료가 시작된다. 암의 재발을 막는 치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병원에 정기적으로 들러 재발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 습관 전체를 발병 이전과 달리해야 한다. 이전의 생활 습관이 암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을 올바르게 하는 데에는 의사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으므로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물론 회식이다, 모임이다, 가는 자리마다 보이는 것은 술 담배를 비롯한 발암 물질뿐이니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암이 재발하도록 잘못된 생활 습관에 자신을 내 맡길 바에는 차라리 일도 그만두고 사람도 만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일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새로운 친구나 인간관계도 만들 수 있지만 암은 그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발한 암은 첫 번째 암보다 그 성질이 포악하고 전이도 빠르다. 그래서 재발한 암과의 싸움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전보다 더 힘든 수술, 더 독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만에 빠져 과거의 실수나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암 환자들이 현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걷는 것과 같은 조심성이 필요하다. ‘이건 괜찮겠지’, ‘이번 한 번은 상관없을 거야’, ‘암이 설마 또 찾아오겠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런 생각들은 유혹에 손쉽게 무너지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한 번 암에 걸렸던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들보다 훨씬 크다. 항상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현재 암이 사라졌다고 안심하지 말아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에 쉼표를 찍는 순간 암 재발의 위험은 다가오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병원 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하루는 아내가 저녁 밥상을 차려주며 걱정된다는 말투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여보, 내 친구 경진이 알죠? 오늘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위암이래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더라고요. 당신 아는 의사 중에 위암 수술 잘하는 의사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나는 아내의 말에 실력 있는 위암 의사 몇 명을 알려주었다. 얼마 후엔 수술도 잘돼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하였다.
다시 친구 아내의 남편 이야기를 들은 것은 1년 반 정도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동창 모임에 다녀온 아내는 그 친구의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경진이 얼굴을 보니 말이 아니더라고요. 하도 얼굴이 상했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해서 물어봤더니 남편이 암 치료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몸 관리를 안 해서 걱정이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그로부터 불과 2년 후로 안타깝게도 암이 재발한 지 6개월을 못 넘기고 사망했다는 말이었다. 암을 치료한 후에는 쉼표를 찍지 말고 계속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행복한 죽음을 설계하자
특히 암 환자에게 죽음의 설계는 꼭 필요하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 죽음을 생각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삶의 대척점으로서의 절망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직시하며 당당히 마주보는 것을 말한다.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해 담담한 시선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여유가 있다. 암을 필요 이상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가짐은 암 치료에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암 치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외에도 죽음의 설계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환자들을 접하며 삶과 죽음의 순간을 경험한 나는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 죽음을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준비한 사람의 경우 죽음조차 자신의 방식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은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며 마지막 나날들을 평화롭게 보낸다. 품위 있는 죽음을 자신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해온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절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결과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는 시간을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허비하고 만다. 첨단 의료시설에 자신을 맡기면 죽음이 찾아오지 않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들에겐 평온한 죽음 대신 마지막까지 질병에 허덕이다 가는 비참함만이 있다. 나는 이런 죽음을 맞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암 환자가 죽음을 직시하고 설계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죽은 후 가족들이 살아갈 방법을 제시하고 환자의 빈자리 때문에 가족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환자의 죽음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삶까지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위해 미리 유서를 작성해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항암 치료 기간 내내 가족들에게 만족한 삶을 살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했으며 후회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기도 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절대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분명히 하였다.
이렇게 죽음을 설계해놓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암과 마음놓고 싸우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힘을 낼 수 있었다. 혹시나 암을 이겨내지 못할 경우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머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해진 것이다.
읽어보시고 더 힘내시라고 옮겨왔습니다.
옮긴이 유익현 010-9877-7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