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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딸과 엄마에게

암사랑 2020. 5. 23. 09:07

세상의 딸과 엄마에게

 

 

세상의 딸과 엄마에게

 

“이번에 A 항암제가 잘 안들었네요… 다른 항암제로 바꾸어 봅시다.”

“선생님 A항암제가 잘 안들으면 B항암제가 잘 듣는 다던데, 저희도 B 항암제로 바꾸게 되나요?”

“네 맞아요. B항암제로 바꿀 꺼에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공부 열심히 하셨네요.”

항암치료 하는 엄마를 둔 딸들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 인터넷도 열심히 찾아보고, 환우회에서 비슷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보도 주고 받는다. 열심히 간병하는 것은 좋은데, 간혹 선을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아니, 대부분은 선을 다 넘는다.

 

“선생님, 저희 엄마한테 뭐라고 좀 해주세요. 식사를 너무 안하세요. 밥도 반공기 채 안드세요. 식사 좀 잘하라고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가 이야기하면 들은 척도 안해요.”

“식사를 통 못하시나 보네요. 체력이 되어야 항암치료를 이겨내지요. 식사 잘 하셔야해요.”

“엄마, 봐라. 선생님도 그러쟎아. 밥 많이 먹어야 한다고. 집에 가서 밥 좀 먹자. 제발 내 말 좀 들어.”

 

항암치료 하는 엄마를 둔 딸들은 엄마를 보면 속상하다. 속상하다 보면 그 속상함을 누군가에게 풀어야 한다. 그리고 평소 해오던 대로 속상함을 엄마에게 짜증으로 푼다.

 

“그런데, 따님이 짜증이 나세요?”

“아니… 제가 짜증이 나는게 아니라 엄마가 밥을 잘 안드시니까…”

“본인도 어렸을 때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하면 밥을 잘 안 먹었나 보죠 뭐. 이제는 역할이 바뀐 것뿐인 것 같은데요.”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요.”

“미치지 마세요. 본인만 괴로워요. ”

 

엄마는 항상 내 곁에 있어왔다. 살아오면서 엄마는 늘 내 곁에 있어왔다.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늘 나에게 달려왔다.

엄마는 그냥 그런 존재였다. 그냥 그래도 되는 존재였다. 짜증날 때는 짜증을 내는 존재였고

화가날 때는 화풀어버리는 존재였고, 엄마는 그냥 그런 존재였다.

 

왜? 엄마니까

 

그런데, 그런 엄마가 암이란다. 이제는 엄마가 오래 못 산단다. 힘이 들어도 돌아갈 존재가 조금 있으면 없어진단다.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야겠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너도 너 같은 딸 낳고 살아봐 라고 하던 엄마의 말도 알게 되었고,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나이가 훌쩍 지나보니 그제서야 엄마의 말들을 알게 되었다. 내 새끼 낳고 살아보니 그제서야 엄마의 흰머리가 보였다. 엄마는 사는 게 힘들면 어떻게 했었는지 이제서야 궁금해 진다.

 

부모를 잃는 다는 것은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 없이도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함을 의미한다. 부모가 되어보는 것, 부모를 잃는 것은 어른이 되는 필요조건 중 하나이다. 둘 다 쉽게 감당이 안 되는 일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나 고아가 된다는 것은 나이 삼사십이 되어서도 감당하기 힘든, 아니 감당하고 싶지 않은 삶의 무게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아이인 것만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엄마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한다. 엄마 없는 세상을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엄마보다 먼저 죽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면 엄마가 너무 슬퍼할 것 같다. 차마 못할 짓이다. 엄마가 자식 잃은 엄마가 되기 보다는 내가 엄마 잃은 자식이 되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결국 엄마가 언젠가는 먼저 내 곁을 떠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게 이제 곧 현실이 된다면… 그리고 그 시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 살아오면서 엄마는 늘 있었다. 엄마 없는 세상을 나는 살아본 적이 없다. 나는 엄마 없이도 잘 살수 있을까. 겁나고 두렵기만 하다. 이런 현실에 짜증이 난다.

 

“엄마한테 짜증 좀 내지 마요. 엄마도 지금 힘들단 말이에요. 당신은 힘들어도 짜증낼 힘이라도 있지. 엄마도 짜증나는데 짜증낼 힘도 없어요.”

“저 엄마한테 짜증 내는 거 아니거든요.”

“엄마한테 짜증 내는 거 맞거든요.”

 

쏘아 붙인 한마디에 딸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떨어졌다. 쏘아 붙인 김에 한마디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힘들어도 짜증낼 엄마라도 있지, 엄마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짜증낼 엄마가 없단 말이에요. 본인 힘들다고 엄마한테 짜증내지 좀 마요.”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다고 굳게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이 될 것이다.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엄마처럼 살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딸들은 그렇게 엄마가 되고 어른이 된다.

[출처] 세상의 딸과 엄마에게|작성자 bhum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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