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타/정겨운 사진들

경복궁의 역사

암사랑 2018. 1. 22. 11:53

경복궁의 역사|◈─……追憶의 사진

gksrmf                              http://cafe.daum.net/fateful-119/AnTO/2945 


 

 

 

 

 

 

 "경복궁...  경복궁의 역사"

 

 

경복궁의 건립 역사 

1392년...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는... 

1394년 서울을 도읍으로 정하고...  종묘 사직 궁궐 등의 공사를 착공하여...

1395년 9월 29일 총 755칸 규모의 경복궁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그 해 태조는...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주요 전각의 명칭을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경복궁의 명칭을 비롯하여...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근정문, 정문(현재 광화문) 등

주요 건물의 명칭은... 이 때 지어진 것이다.

 

이후 1411년 태종은...  경복궁에 금천을 파도록 명하고... 이듬해에는 경회루를 건축하였다.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법궁다운 면모를 갖춘 것은... 세종대왕 때였는데...

1426년...  왕명을 받은 집현전에서...  경복궁의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지어올렸으니...

광화문, 홍례문(현재 흥례문), 일화문, 월화문, 건춘문, 영추문, 영제교 등이 이때 지어진다.

그리고...  1429년 사정전과...  경회루의 중수를 시작으로 주요 전각을 새로 짓거나 중수하였다.

명종 8년에는...  실화로 경복궁이 전소되었는데...  이를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지었다.

이 때에...  동원된 인력이...  부역이 2,200명이었고...  품팔이꾼이 1.500명이었다고 한다.

명종대에 건립된...  경복궁을 그린...  ‘한양궁궐도병’이라는 그림이 있었는데...

그림은...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

 

1592년...  선조가 피란할 때에 난민이 발생하였고...

노비문서와...  노략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의 궁궐들을 불태웠다.

그 후로...  273년간 재건하지 못하다가...

1865년...  음력 4월 2일 고종의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의 지시로...  중건이 시작되어...  1868년 재건되었고...

경복궁의 재건을 주도한...  흥선 대원군은 권력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한일병합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

일제는...  경복궁 건물 대부분을 훼철하여... 

해방 직후에는...   전체의 십분의 일 규모만 남게되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광화문과 만춘전등이 불타기도 하였다.

이후...  1990년에 들어서...  정부는 20년 계획으로...

단기 복원 계획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9년까지...  원래 규모의 40퍼센트...  수준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복궁
종    목사적  제117호
명     칭경복궁(景福宮)
분     류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343,888.1㎡
지 정 일1963.01.21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크게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는데...  

집현전을 두어...  학자들을 가까이 하였다.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보루각을 세웠으며... 

궁의 서북 모퉁이에는...  천문 관측시설인 간의대를 마련해 두었다.

또한...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4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를 설치하였다.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에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의 행동을 하여...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현재...  궁궐 안에 남아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천추전, 수정전, 자경전, 경회루, 재수각,

숙향당, 함화당, 향원정, 집옥재, 선원정 등이 있다.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都城)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을 지킨 궁궐로서...

궁의 왼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들의 배치는...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왕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는...  근정전과 왕이 일반 집무를 보는 사정전을 비롯한...

정전과 편전 등이 앞부분에 있으며...  

뒷부분에는 왕과 왕비의 거처인 침전과...  휴식공간인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인데... 

이러한 형식은...  이 궁이 조선의 중심 궁궐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비록 궁궐 안...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정전·누각 등의 주요 건물들이 남아있고...  처음 지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조선의 정궁의 모습을...  대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복궁근정전
종    목국보  제223호
명     칭경복궁근정전(景福宮勤政殿)
분     류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1동
지 정 일1985.01.08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었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하였다.

앞면 5칸·옆면 5칸 크기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여진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며... 그 형태가 화려한 모습을 띠고 있다.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 훌륭한 솜씨로...

12지신상을 비롯한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건물 안쪽은...  아래·위가 트인 통층으로 뒷편 가운데에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근정전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정승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햇빛을 가릴 때...  사용하였던 고리가 앞마당에 남아 있다.

근정문 좌우로는...  복도 건물인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

근정전은...  조선 중기 이후 세련미를 잃어가던...

수법을 가다듬어...  완성시킨 왕궁의 위엄을 갖춘...  웅장한 궁궐건축이다.

 

 

 

 


경복궁경회루
종    목국보  제224호
명     칭경복궁경회루(景福宮慶會樓)
분     류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1동
지 정 일1985.01.08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에는...  48개의 기둥에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하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 높이를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경복궁자경전
종    목보물  제809호
명     칭경복궁자경전(景福宮慈慶殿)
분     류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일곽
지 정 일1985.01.08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자미당 터에...  고종의 어머니인 조대비(신정익왕후)를 위해 지었으나...

불에 타버려...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자경전은...  대비들이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는 침전 건물로, 총 44칸 규모이다.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서북쪽에 복안당이라는 침실을 두고...

중앙에는...  중심 건물인 자경전을 두었다.

또, 동남쪽에는...  다락집인 청연루를 두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였다.

주변에는...  수십 개의 집과 담장, 문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없어졌다.

지금은...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가진...  글자와 꽃, 나비, 대나무 형태를...

흙으로 구워 새겨 넣은...  아름다운 꽃담장과 동식물 무늬인 십장생을...

조화있게 새겨 넣은...  집 모양의 굴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정궁이라 할 수 있는 건물로...  경복궁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대비전이다.

 

 

 


경복궁자경전십장생굴뚝
종    목보물  제810호
명     칭경복궁자경전십장생굴뚝(景福宮慈慶殿十長生굴뚝)
분     류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주거시설
수량/면적1기
지 정 일1985.01.08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자미당 터에...  고종의 어머니인 조대비(신정익왕후)를 위해 지었으나...

불에 타버려...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굴뚝은...  자경전 뒷담의 한 면을 돌출시켜 만든 것이다.

굴뚝은 네모 형태로...  가운데는 동식물 무늬인 십장생을 새겨 넣었다.

십장생 무늬는...  가장 한국적인 무늬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조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굴뚝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었으며...

지붕 위에는... 연기를 빠지게 하는 시설을 해 놓았다.

굴뚝이면서...  장식적인 기능을 충실히 하고... 그 조형미 역시 세련되어...

조선시대 궁궐에 있는...  굴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경복궁아미산의굴뚝
종    목보물  제811호
명     칭경복궁아미산의굴뚝(景福宮峨嵋山의굴뚝)
분     류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주거시설
수량/면적6기
지 정 일1985.01.08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조선 태종은...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고... 

경회루를 세우고...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교태전 뒤뜰에 인공동산을 세웠는데...  이를 아미산이라 하였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종 2년(1865) 경복궁을 고쳐 세울 때 만든 것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경복궁근정문및행각
종    목보물  제812호
명     칭경복궁근정문및행각(景福宮勤政門및行閣)
분     류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일곽
지 정 일1985.01.08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근정문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에 복도 건물인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세우면서 같이 지은 것이다.

근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형태가 날카롭고...

곡선을 크게 그리고 있어...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행각은...  근정전의 둘레를 직사각형으로 둘러 감싸고 있는데...

원래는...  한 칸 복도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2칸 복도로 만들었다.

양식과 구조는...  간결하게 짜여 있으며...  남행각이 연결되는 곳에...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북행각 가운데에 사정문(思政門)이 있다.

동·서쪽으로는...  각각 밖으로 돌출한 융문루(隆文樓)·융무루(隆武樓)가 있다.

벽에 만든 창의 형태는...  사각형의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궁 정전의 남문 중...

하나 밖에 없는 2층 건물로...  위엄을 갖춘...  궁궐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복궁풍기대
종    목보물  제847호
명     칭경복궁풍기대(景福宮風旗臺)
분     류유물 / 과학기술/ 계측교역기술용구/ 도량형
수량/면적1기
지 정 일1985.08.09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세종로 1가 경복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복궁

조선시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재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풍기와 풍기대에 대해... 『증보문헌비고』를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화강암을 다듬어...  아래에 상을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새긴 8각기둥을 세운 모습이다.

8각형 기둥의...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를 꽂는 구멍이 있고...

그 아래 기둥옆으로...  물이 고이지 않게 배수구멍을 뚫었다.

깃대 길이는...  확실치 않고 깃대 끝에는 좁고 긴 깃발을 매어...

그것이...  날리는 방향으로 풍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알 수 있었다.

세종 때 이후...  측우기로 강우량을 측정하고... 

강과 개천의 수량을 재는 등...  관측기술이 발달했는데...

풍기에 의한 바람 측정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18세기까지도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 풍기대도...  18세기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궐 안...  그림인 동궐도(東闕圖)에도... 

풍기대 위에...  길게 나부끼는 풍기가 그려져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크기는...  아랫단의 높이가 80.8㎝...

위 8각 기둥의 높이가...  143.5㎝로 전체 높이가 224.3㎝이다.

경복궁 풍기대는...  창경궁 풍기대와 함께... 

조선시대 바람을 측정했다는...  실증적 자료로서...  

기상관측의 선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흥례문2.근정문3.근정전4.사정전
5.강녕전6.수정전7.경회루8.교태전
9.흠경각10.아미산11.자경전12.집경당
13.향원정14.건청궁15.집옥재16.태원전
17.자선당18.비현각19.경복궁관리소20.국립민속박물관
21.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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