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희망가] “재미있게 사는 게 제일 좋은 처방이었습니다” 림프종 5년 생존자 조양제 씨가 사는 법 |
가훈이 ‘재미있게 살자!’라는 사람!
이 가훈을 온 가족과 몸으로 실천하며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삶을 사는 사람!
그래서일까? 내일 당장 죽어도 그동안 여한 없이 즐겁게 살았기에 암 선고에도 낙담하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다. 대구시 동구에 사는 조양제(54세) 씨다.
2010년 3월 림프종 확진, 그해 4월부터 8월까지 항암치료 그리고 2015년 4월, 5년 생존자로서 완치 판정받은 그는 수많은 암 환우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암 투병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암 투병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그럴 수 있다!”를 온몸으로 증명해낸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통스런 투병과정을 즐겁고 재미있는 일로 반전시킨 그만의 독특한 암 극복비결, 들어봤다.
위암? 아니 림프종!
아침마다 윗몸일으키기 50회씩을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몸짱’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침에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마다 위에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간혹 배가 콕콕 쑤시면서 아팠다. 한밤중에는 통증이 더 심해져 자다가 깨기 일쑤였다. 자다 깰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 반복되자 위에 문제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10년 3월 중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해볼 생각으로 동네 내과를 찾았다.
내시경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남편의 검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 이숙녀 씨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만에야 의사가 나와 말했다. 위암 말기 같으니 어서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담담했습니다. 요즘 의술이 워낙 좋으니 치료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름 즐겁게 살았으니 여기서 어떻게 돼도….’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위암이 아니었다. 암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림프종! 임파선암이었다! 3월 31일 조양제 씨는 림프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49세였다.
“의사가 같은 암이라도 위암보다 림프종이 예후가 더 좋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좀 더 편안해졌죠. 또 아내가 우리나라에서 림프종으로 제일 유명한 곳에 가서 치료를 받자며 많은 노력을 했는데 현명한 아내의 든든한 내조가 무척이나 고마웠습니다.”
절주, 금연, 꾸준한 운동, 늘 즐겁게 사는 생활. 조양제 씨에게 암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런 그가 암 진단을 받자 주위에서 더 당혹스러워했다. 진단을 반신반의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에 약한 편이기도 한데 당시에 일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고속버스 타고 소풍 가듯 항암치료를~
2010년 4월 2일, 조양제 씨 부부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때부터 조양제 씨 부부의 대구-서울 간 통원치료가 시작됐다.
“늘 아내와 함께 병원에 다녔습니다. 암 때문에 나선 길이었지만, 아내는 늘 ‘소풍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둘이 고속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서 데이트하듯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병원엘 다녔습니다.”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아내 덕분에 온 가족이 내일 죽어도 여한 없이 즐겁게 살아왔다는 조양제 씨. 그는 그 당시 힘든 티 하나 안 내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함께 해준 아내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소풍 가듯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4시간 걸려 찾아간 곳은 서울성모병원이었다. 또다시 검사가 시작됐고 12시간의 항암치료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항암치료를 4월부터 8월 말까지 총 6차까지 받았다.
“항암치료로 얼굴은 붓고, 속은 메스껍고,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빠졌습니다. 같은 병실에 있던 아가씨가 눈썹을 그려주기도 했죠. 그 아가씨는 젊고 긍정적이기도 해서 먼저 퇴원했는데 나중에 세균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암은 관리를 잘해야 하는구나!’ 절감했습니다.”
환자임을 잊고 살았더니 세월이 가더라
암 투병 중에 가장 반가웠던 것이 자신을 환자 취급 안 하는 것이었다는 조양제 씨. 아내부터가 그랬다. 병원에서 말고는 아내는 자신을 환자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밥상도 평범한 듯 비범했다. 늘 먹던 밥상에 닭발 곰탕이나 장어 등 한두 가지 특별한 음식이 올라올 뿐이었다. 덕분에 자신이 암 환자라는 생각에 골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스스로도 자신을 환자 취급하지 않았다. 암 투병 중이었지만 따로 요양하지 않고 그전처럼 계속 사업을 운영했다. 평소처럼 출근하되 조금 일찍 퇴근했다. 일하다 보면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기도 했다. 꾸준히 하던 운동도 거르지 않았다. 오후 4시경 퇴근해서 아내와 함께 야산으로 등산을 갔다. 쉬엄쉬엄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하루 두 시간씩 꾸준히 걸었다. 아내와 둘이 연애하듯이.
재미있게 살다 보니 세월이 가더라
가훈이 ‘재미있게 살자!’이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는 조양제 씨. 암 진단에도 낙담하지는 않았지만, 눈물을 흘린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니까 머리카락을 아예 다 깎아버렸습니다. 그때 눈물이 나더군요.”
하지만 웃었던 날이 훨씬 더 많았다. 어느 생일날 퇴근길, 집 앞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깜짝 놀랐다. 눈앞에 수십 개의 초로 만들어진 거대한 촛불 하트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딸아이가 다락방에서 벚꽃을 뿌려주며 그를 맞았고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제 암 진단에 딸아이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암보다 그게 더 마음 아팠습니다. 그런 딸이 저를 위해 해준 생일 이벤트,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조양제 씨의 딸 조은비 양은 아버지의 암 진단 후 헌혈을 시작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헌혈하고 있다. 길었던 머리카락도 잘라 소아암 환자의 가발을 만드는 데 기부도 했다.
딸만이 아니다. 조양제 씨가 암을 극복하는 데 아내와 동생 다음으로 큰 도움을 준 이들이 있다. 바로 이웃사촌인 두 부부(이승건·봉미경 부부, 이희준·노경희 부부)다.
“이들 두 부부가 생명의 은인입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3년간 매주 토요일에 이들 두 부부와 즐겁게 놀았습니다. 아무도 저를 환자 취급하지도 않았고, 저 스스로도 암 환자라는 걸 잊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3년을 지냈기에 암도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5년 4월, 림프종 5년 완치 판정~
2015년 4월, 조양제 씨는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 후 두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왔다. 그리고 5년째 되던 올해 4월, 담당 의사가 말했다.
“재발 소지는 거의 없으니 이제 그만 오셔도 됩니다.”
정기검사 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일주일이 늘 조마조마했다는 조양제 씨. 그 일주일간의 조마조마함이 스트레스가 되어 오히려 재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기검사 받을 시점에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을 때는 ‘혹시나?’ 하기도 했다. 매 검사 후 “괜찮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암 확진을 받았을 때, 아내는 말했다. 언제 어떻게 되든 재미있게 살자고. 치료도 징징거리며 받지 말고, 재미있는 추억으로 만들자고. 그 덕분에 아내와 좀 더 가까워졌다. 아프면서 딸아이와 더 가까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단단한 가족이 되었다.
“완치 판정받고 나니 개운했습니다. 이제 마무리가 됐다는 생각에 해방감은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게 암이라고 합니다. 끝이 아닌 끝인 거죠. 그렇더라도 즐겁게 재미있게 살면서 최선을 다 해보려고 합니다.”
2015년 8월 현재 조양제 씨는…
“가족과 나들이 다니고 여행하면서 언제나처럼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암을 만나기 전에도 작고 소박하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나들이나 여행을 많이 했다는 조양제 씨. 지금도 여전히 틈만 나면 나들이하고 여행을 한다. 이런 소박한 가족 나들이가 병을 이겨나가는 데 큰 힘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3년간 힘든 시간을 함께 해주었던 생명의 은인인 두 부부와도 부부동반 여행을 다니고 있다. 즐거움과 행복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삶을 사는 조양제 씨. 그 향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 같다.
조양제 씨가 말하는 나의 투병 생활은…
1. 재미있게 살았다
암을 만나기 전에도 후에도 재미있게 살려고 주말마다 나들이나 여행을 다녔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암도 백세시대의 동반자로 여기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즐겁게 생활했다.
2. 꾸준히 운동했다
처음엔 동네 야산을 매일 2시간씩 오르내렸다. 회복하면서 윗몸일으키기와 푸시업을 했다. 항암 때 거의 사라졌던 복근이 다시 생겼다. 딸내미가 몸짱이라고 인정해준다. (^^) 몸짱 비결은 매일 푸시업 30개씩 4세트, 윗몸일으키기 60~70개씩 하는 것이다.
3. 잘 먹었다
무조건 잘 먹었다. 비위가 안 좋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잘 먹었다. 잘 먹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고, 자신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4. 적극 치료에 임했다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잘 찾아갔고, 좋은 가족, 좋은 동생, 좋은 벗도 있었다. 응원해주는 주위사람들에게 상처 안 주기 위해 치료에 적극 임했다. 아파서 운동하기 싫다가도 그들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하게 됐고, 먹기 싫어도 더 먹게 됐다. 그 결과 운동과 식사로 몸에 자생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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